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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야기

맨부커상 수상 작가 줄리언 반스의 웃으면서 죽음을 이야기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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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웃으면서 죽음을 이야기하는 방법 - 10점
줄리언 반스 지음, 최세희 옮김/다산책방

영국 문학의 제왕, 맨부커상 수상 작가 줄리언 반스의

인간의 영원한 숙제, 죽음에 대한 유쾌한 한판 수다!


작가이기 전에 인간일 수밖에 없는 그, 줄리언 반스. 예순을 넘긴 시점에 그는 고민에 빠진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결론, 죽음에 대하여. 


나는 신을 믿지 않지만 신이 그립다. 누가 신에 관해 물으면 나는 이렇게 답한다. 옥스퍼드, 제네바, 소르본 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쳐온 형에게 내 발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형은 딱 한 마디만 했다.

“질척해.”

- 본문 9쪽


‘보이지 않으면 믿지도 않는다’는 불가지론자로서 내세에 대한 어떠한 희망도 기대도 품을 수 없었던 그가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과 죽음에 대해 유쾌한 토론을 벌인다. 신을 그리워하는 태도를 질척하다고 일갈해버리는 철학과 교수 형, 무신론자이자 공산주의자 어머니, 전신을 지배하는 병마와 싸우다 병실에서 외롭게 죽음을 맞이한 아버지까지……. 

『웃으면서 죽음을 이야기하는 방법』은 누군가의 아들이자 형제인 줄리언 반스와 영국 문학의 제왕으로서 내로라하는 작가들의 죽음을 면밀히 파헤친 줄리언 반스가 죽음 앞에 선 인간의 마지막 모습을 기록해낸 에세이다.

줄리언 반스는 사생활을 공개하기를 극도로 꺼리는 작가이지만, 이 책에서만은 다르다. 줄리언 반스의 가족은 멀리서 봤을 때 평범하고, 누군가의 눈에는 훌륭해 보이기까지 하다. 교장을 지낸 할아버지, 프랑스성애적(?) 고상한 품격을 갖춘 할머니, 온화하고 관대한 아버지, 노동당 출신의 어머니, 철학과 교수 형까지. 그러나 가까이 들여다봤을 때 반스의 가족은 괴팍하며 쩨쩨하고 뒤틀린 면 또한 있다. 우리의 가족이 그러하듯이.

줄리언 반스가 기억을 더듬어 캐낸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작가, 작곡가, 종교인, 무신론자, 불가지론자, 자유주의자나 냉소주의자 등의 에피소드들로 한데 얽혀 천태만상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이 책은 술자리 수다 같은 일화들과 고금을 통해 전해오는 주옥같은 경구들이 섞여 있는 매우 독특한 에세이라 할 수 있다. 


쥘 르나르, 쇼스타코비치, 몽테뉴, 플로베르, 스탕달…… 

역사 속 위인들의 경구를 통해 깨닫는, 죽음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줄리언 반스는 『웃으면서 죽음을 이야기하는 방법』에서 작가, 작곡가 등 역사적 위인들의 한마디를 되새긴다. 죽음에 대한, 죽음을 코앞에 두었을 때 할 만한, 작가나 작곡가가 아닌 일정한 생의 주기를 마무리할 운명에 처한 한 명의 인간으로서 고심에 고심을 거듭해 내뱉은 한마디를. 그는 자신의 이런 작업의 이유를 『홍당무』로 유명한 프랑스의 작가 쥘 르나르의 말로 대신한다. “죽음과 마주할 때 우리는 어느 때보다 책에 의지하게 된다.” 그런 이유로 반스는 작가와 작곡가 들이 남긴 기록들을 샅샅이 파헤친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의 한 예로, 줄리언 반스는 작가 아서 케스틀러의 『죽음과의 대화』의 한 장면을 든다. 인간은 왜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이냐고 묻는 비행사에게 케스틀러는 “난 한 번도 죽음을 두려워한 적이 없습니다. 다만 죽어가는 것을 두려워했을 뿐이죠”라고 답한다. 이에 반스 또한 죽기 전 정신이 오락가락하고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던 자신의 부모처럼 될까봐 두렵다고 고백한다.

줄리언 반스는 샤를 뒤보스의 ‘르 레베일 모르텔’이라는 문구를 ‘죽음의 숙명을 알리는 모닝콜‘이란 말로 옮겨낸다. 이는 낯선 호텔 방에서 이전에 묵었던 투숙객이 맞춰놓은 자명종이 울리는 바람에 야심하기 그지없는 시간에 느닷없이 잠에서 깨어나 암흑과 공포 속에 내던져진 채, 현세가 잠시 세 들어 사는 세계임을 통렬히 자각하게 되는 것과 같은 상태를 말한다.

몽테뉴는 “죽음에 반격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한시도 놓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줄리언 반스는 “다른 이에게 죽는 법을 가르쳐준다면, 기실 사는 법을 가르쳐주는 것과 같다”고 한다.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한시도 놓지 않는 것, 그것이야말로 지금 삶을 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다. 예전에 사람들은 죽음에 대한 얘기를 거리낌 없이 하는 편이었다. 죽음과 장차 맞이하게 될 인생이 아니라, 죽음과 절멸의 이야기 말이다. 이에 반스는 플로베르의 한마디를 빌려온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절망의 종교를 가져야만 한다. 사람이란 모름지기 자신의 운명을 감당해야 한다. 말하자면 자신의 운명처럼 무감해져야 하는 것이다. ‘그렇군! 그런 거군!’ 하고 말함으로써, 그리고 발아래 놓인 검은 구덩이를 응시함으로써 사람은 평정심을 유지하는 법이다.” (본문 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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